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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국 관련 잡문 [나의 시평]
2008/06/04 15:47
http://blog.naver.com/kwonoyub/110031756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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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적인 한류 충남대학교 인문대학 일어일문학과 교수 權五曄
배용준씨가 일본에 입국하자 3500여 여성들이 열광하였고, 또 방송국은 그것을 생중계하였다니, 놀라운 일이라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에서 우리 연예인들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요즘 찾아오는 일본인들이 그것을 실감케 해준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를 찾아오던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선견지명을 자랑하면서 최근의 한류에 편승하는 그들과는 애써 구별하려 한다. 그들은 「겨울연가」의 촬영지를 찾아다니며 사진이나 소품을 사 모으는 그들을 비웃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들의 가방에서도 그런 물품이 쏟아져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면, 그들은 부인의 선물이라며 애써 설명한다.
최근에 찾아온 친구가 딸까지 대동한 것을 보면, 그 여행은 그 부인이 선동해서 이루어진 것이 틀림없다. 한국이 처음이라는 모녀는 「겨울연가」의 연고지를 찾아다니다 시간이 나면 백화점으로 직행하고 있었다. 남편은 그런 모녀를 보는 것이 행복하단다. 일본 여성들이 찾아오는 나라여야 한다는 관광정책이 실현 된 것일까. 일본수상도 배용준씨를 「욘사마」라고 호칭한 말이 일본 최고의 유행어로 선정된 것을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수상은 천황을 대리하는 자이기에, 그가 하는 말의 의미는 크다. 어떤 수상은 「일본은 신국이다」라는 말로 우리를 노하게 한 일도 있다. 그가 말하는 신에는, 일본의 신이 절대적이고 그 신이 통치하는 일본이 천하를 지배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의 수상이 한국남자를 부러워했다니, 그 이면까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가운 일이다.
일본에 한류의 열풍이 분다 해서 그들이 한국을 좋아한다고 믿어도 되는 것일까. 그들과 진실을 토로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일까. 어려운 일 같다. 만일 그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하나라도 물으면 어떻게 반응할까. 그것을 왜 묻느냐. 그런 것은 미래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며 입을 다물지도 모른다. 일본은 그래도 좋을지 모르나 우리는 그게 아니다. 미래가 소중한 만큼 과거도 소중한 것이다.
일본의 환영을 받았던 이는 문물을 전해준 고대인이나 조선통신사 정도일 것이다. 특히 조선통신사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시집의 서문은 물론, 간판이나 현판 등을 써달라는 성화가 대단했다 한다. 한 통신사는 밥을 먹을 시간조차 없었다는 사실을 기록할 정도였다. 그래서 통신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일본을 얕잡아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 일본인들의 시문의 수준이 그렇게 낮았던 것은 아니다. 적어도 조선인들의 문장을 알아볼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중에는 오히려 통신사의 능력을 비웃는 것을 즐기는 자도 있었다.
아라이(新井)라는 정치고문이 그러했다. 그도 무명시절에 시집의 서문을 받으려 통신사를 찾아갔다가, 시문이 좋다는 통신사의 평을 들은 것이 출세의 계기였다. 막부의 최고실력자가 된 그는 통신사들과의 필담을 즐겨했다. 그런데도 그의 한국관은 극히 편협하였다.
그는「우리 군에 잡혀온 조선 남녀 중 송환된 수가 전후 3000명에 이르게 되니 마침내 양국이 화해하게 되었다. (중략) 일본의 은혜를 그 나라 군신들은 오랫동안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는 주장을 폈는데,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임진왜란의 결과를 우리에게 은혜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일본에서의 한류의 열풍은 반가운 일이다. 우리는 그 열풍을 지속시켜나가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하고 이것을 매개로 하여 교류도 촉진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이 무엇을 생각하는가를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일본의 수상이 부러워했다는 「욘사마」도 계속 나올 것이며, 통신사와의 필담을 즐기던 아리이의 본심도 알게 될 것이다.
한류의 근원을 생각하면
충남대학교 인문대학 일어일문학과 교수 權五曄
세계 각지에서 불고 있는 한류열풍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며 반신반의하기도 한다. 혹자는 사건이라며 경계심을 넘은 거부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것의 단명을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선은 반기며 자랑스러워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걱정부터 하는 것은 풍년을 기뻐하지 못하다가 흉년이 들어서 풍작을 그리워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한류란 타민족이 우리문화의 매력을 인정하고 즐긴다는 것이니, 어찌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일단은 반기며 그 본질과 발생의 원인을 찾아 그것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원래 문화란 간단한 것이 아니어서 그 원인을 알아내고 대책을 세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만도 아니다. 일단 그 근원을 알아내게 되면 그것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도 가능하기 마련이다.
흔히 한류란 갑자기 일어난 유행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그렇지 않다. 반드시 그럴만한 원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류로 형식화되어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그것은 잉태되고 있었다. 우리나 우리문화를 매개로 하는 당지에서의 활동이 있어, 그 결과들이 그곳에 잠복되어 있다가, 일정한 작품의 연예인을 만나 발현되기 시작한 것일 뿐이다.
먼 이야기는 접는다 해도 최근까지도 일본은 우리를 아주 멸시하면서, 정치나 경제의 현실을 근거로 자신들의 사고를 정당화 시키고 있었다. 80년대에 일본에 산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역사를 조롱하고 선조들을 학살했던 그들이, 우리들에게 「자민족을 학살하는 야만인들의 입에서는 마늘냄새가 날뿐이다」라며 비아냥대던 일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마치 자기들은 살인을 모르는 착하디착한 민족이라는 것 같은 언행을 취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만국기의 장식을 좋아한다. 그것을 걸어놓고 선진화된 자국, 세계화된 자기들이라는 것을 서로 확인해주며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만국기 속에는 태극기가 들어있지 않았다. 얼굴을 붉히며 따지는 한국인이 나타나면 또 그들은 그 자체를 즐겼다.
원인이나 근거도 모르면서 차별당하며 그 의미조차 알지 못하고 그저 생존해가는 재일한국인과 그들을 보는 우리들이 가지는 민족적 자긍심이란 오기에 가까운 것으로, 아침에는 김치를 먹지 못하고 나가야 했다. 한국인이라는 것이 밝혀질 것이 두려워 말을 삼가는 사람도 적지 않았고, 일본식 이름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낄 때가 많은 사회였다.
역사의 교란을 반성하지 않은 자들의 오만한 차별을 접하고 견딜 수 없는 모욕으로 느끼는 많은 사람들은 서로가 민족대표자라도 된 듯이 각자의 직분에 충실하며 당당해지려 했다. 그것은 처절한 몸부림이고 투쟁이었다. 우리의 우월성과 가능성을 증명해야겠다는 오기는 활활 타올라 그 사회에 감동을 흩뿌리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중단 없는 오기는 한국인의 정열이나 애국심으로 비쳐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만들었는지, 「일본 일등이면 세계 일등」이라는 말을 태연스럽게 하다가도 우리들 앞에서는 멈칫거리기도 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범죄를 회상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반성하여 해방 되려는 용기가 없다. 그래서 자신들의 과오를 우월감으로 발전시키며 피해자의 책임론을 즐겨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의 허탈감만을 초래할 뿐, 자기모순의 탈출구가 되지는 못한다. 그런 그들 앞에 당당한 한국인이 서게 되면, 그들은 더 큰 혼란에 빠지고 만다. 그래도 우월성을 주장해보기도 하나, 결국은 노도와 같은 격정에 입을 다물고 만다. 그래서 내면에 응축된 그들의 무력감은 스스로를 해소시킬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그것이 우리들의 정감어린 문화를 만나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한류이다. 이제 불기 시작한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소화해낼 것인가. 우리는 이제부터 그것을 생각해야 할 때이다.
그렇다 해서 그들이 한국인들의 결정적인 열변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한류가 한창이고 그 한 가운데에 서있는 연예인이 이야기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한류열풍은 많은 열정은 숨긴 체, 덮어둔 체 진행되고 잇는 셈이다. 그 숨겨 노은 문제의 열정들이 폭발될 때, 한류의 열풍은 어찌 될 것인가. 격정들의 충돌로 상호간의 비방전이 벌어지거나, 등을 돌리며 무시하려는 노력이 거세가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한류의 종말을 고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제복입은 자들이 동족을 갈해하고 거짓말을 줄줄히 해대는 80년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자신한다.
한류가 분 것은, 일본인 들이 한국을 좋아하게 된 것이고, 그것은 멋있는 능력있는 한국인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멋있고 능력있는 사람이 계속 배출되고, 그것이 일본인들을 감동시킨다면, 한류는 다시 불 것이고, 그때 부는 바람은 더 거세고 정취가 있을 것이다.
사형선고를 받을 정도로 탄압받던 정치인이 국가지도자층을 이루었을 때, 일본인들은 그 이전에 가져보지 못했던 경외감을 느꼈을 것이며, 대학을 나오지 못한 자가 학벌중심의 나라에서, 그 나라의 최고통수권자로 선출되는 것을 보고 감동했을 것이다. 그런 감동이 하나로 분출된 것이 한류이다. 흔히 일본인들은 치안의 안전과 이권이 존중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라는 이야기를 자주한다. 말로는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거명하지만, 그것에는 일본인들의 오만이 넘쳐흐른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들의 목소리에 겸손함이 조금씩 엿보인다.
우리가 일본에 가면, 처음에는 주위사람 모두가 일본어 일본의 선생이다. 그들은 서로 앞다투어 지도해주고 온 갖 친절을 베푼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물어볼 사람은 점점감소하고, 친절을 보여주는 사람도 줄어든다. 물어볼 사람이 주위에 없게 될 때, 그 친절했던 사람들은 옛날 일만을 생각하면서, 가까이 다가 오려하지 않는다. 다가 온다해도 옛날의 그들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성장했다는 형태로 변해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친절을 베풀며 만족해하던 그들이 아니라, 성장해버린 모습을 보고 그들이 돌아가서 살 나라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게 된다.
그러한 가능성을 일본에 가는 많은 사람들이 보여주고 실증하여 왔다. 또 그것과 더불어 국가라는 실체가 풍부해지고 풍족해졌다. 그들의 상상을 우리들이 실증해보인것이다. 그것이 신뢰감을 주어 한류의 근원을 이룬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보면, 한류에관한 문제를 풀 수 있는 구체적인 답은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차후의 과제로 같이 생각해볼 것이다.
갑자기 부는 바람이라 신기하고, 우리 것을 천시하던 우리들이었기에 의심스러운 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 외국인들이 우리들과 우리문화를 좋아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열풍이 단기간에 가라앉을 것을 걱정하며, 그 대책을 이야기하거나 요구하기에 여념이 없다. 또 그것에 대한 답들도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있다보면, 한류의 원천에 대한 인식이 정확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확한 답이야 있을 리 없으나 근원에 가까운 사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저 뜬
구름처럼 흘러왔다 흘러가는 것이 아니기 마련이다.
『독도와 죽도』 序文(2005,10,20)
우리는, 독도를 타케시마라고 부르며 그 소유를 주장을 하는 일본을 이웃으로 하고 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이기에 화합하며 인류와 상호의 이상적인 미래를 같이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역사가 시작된 이래 그렇게 해왔다. 온갖 문화를 전래시켜주며 그들의 문화생활에 결정적인 계기를 지공해주었다. 일본도 그것은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비록 대륙문화라는 표현 속에 포함시켜버리지만, 그것은 우리들과의 관계를 희석하려는 의도된 표현일 뿐이다.
일본은 우리의 문명을 기반으로 나름대로의 문화를 구축하면, 그 실험의 대상을 우리로 삼으며, 우리에게 감사하기 보다는 자기과시에 급급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감사에 앞서 질시에서 벗어나질 못하여, 원인 없는 적대감을 정당화하고, 그 적대감을 실현시키는 것으로 자국의 우월감을 확인하려 했던 것 같다. 무위와 같은 국력이 쌓일 때, 통제할 수 없는 폭력으로 우리들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주는 것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은 그 같은 폭거를 국제질서상의 자연현상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합리화하며, 잘못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다. 피해자의 책임만을 주장하는 잔혹한 사고이다.
일본은 어쩌다 한 번씩 마지못해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내용의 말을 한다. 그리고 곧바로, 그것보다 훨씬 심한 말로 번복시키고 만다. 반성을 하고 사고한다는 그 말들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은, 주변국들만이 아니라 일본 자신도 알고 있다. 그것은 침략의 산물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현실의 행동들이 그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일본은 독도를 타케시마라고 부르면서 「역사적으로 보아도 자국령」이라는 식의 주장을 하는데, 그 근거의 하나가 1905년의 관념적인 선포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1905년은 어떤 해인가. 우리는 생각도 하기 싫은 숫자이다. 될 수만 있다면 잊고 싶은 치욕의 숫자이다. 그런데 일본은 그 숫자가 의미하는 사건을 자랑스럽게 들먹이고 있다. 그때 그들의 입가에 흐를 싸늘한 미소를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다. 어째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그들을, 우리는 이웃으로 가져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러한 행위가 오늘날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그것에 대처해나갈 우리들의 자세도, 저절로 추스려질 것이다.
일본에 문자를 전해준 것이 백제라는 것은 한일간의 상식으로 통하는 일이다. 백제의 학자들을 통해 문자의 사용법을 터득한 일본이 한 일은, 고구려에서 온 국서에 대한 반발이었다. 고구려왕이 보낸 국서 중에 「고구려왕이 일본국을 교한다(高句麗王敎日本國)」라는 표현이 있었던 것이다. 교(敎)의 의미를 알았던 것이다. 만일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면 간과할 일이었다. 그렇게 문자를 사용할 수 있게 되자, 그 능력으로 독자적인 가치관을 구축하게 되는데, 그것이 자국 중심의 세계관이었다.
원래 일본이란, 해가 뜨는 변방, 극지에 있는 미개지를 의미한다. 그 일본에 관념적인 가치관을 스스로 부여하고, 스스로 인정하는 방법으로 구축한 천하관은, 일본이 천하의 중심이라는 세계관이다. 문제는 그것이 우리의 희생을 바탕으로 해서 성립된다는 것이다. 관념은 율령제정이라는 문명적 작업을 거치면서, 확신으로 전환되어, 부단히 그것을 실현하려 했는데, 그것이 우리를 부정하고, 우리를 모독하는 행위로 나타나곤 했었다. 그 좋은 예가 불교를 중심으로 하는 일본의 태도변화이다.
독문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는, 문제가 발생될 때마다,
일본과 관련된 학문을 하는 제가 생각했던 문제였습니다.
휴면기라고 생각한 어느 날 책을 모아 읽어보기로 생각하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별다른 의견을 구축한 것도 아닙니다만,
같이 자리하여 생각해보는 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잉태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일본의 전문가 두 분을 모시고 소개 드리게 되었습니다.
나이토우 선생님은, 시마네대학에 계시며, 객관적인 기록에 의거하여
독도문제를 공론화한 분이십니다.
좋은 생각을 좋은 방법으로 표현하고 계십니다.
오오니시 선생님은 시간을 만들어 폭 넓게 문제에 접근하고 계십니다.
12월 2일 16시
충남대학교 인문대학 4층에 있는
교수회의실에서 독도 심포지엄을 개최합니다.
다망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내셔서 참가하여 주시면, 더욱 좋은 시간이 되리라고
생각하며, 왕림하여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2005년 11월 22일
권오엽 權五曄드림
2007,1,6 충청인의 자부심
1980년대의 일이다. 당시 우리나라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는 만화가가 일본 평론가의 질문에 곤욕을 치루다 주인공 설정에 일관성이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말았다. 작품 속에서 온갖 나쁜 짓을 하는 일본군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만화가는 작품을 만들기 전에 등장인물들의 신강 체중 기호식품 등등을 설정해둔다는 것이다. 작품이기 위해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런 풍토 속에서 제작되는 대중문화가 수입되면 우리의 그것들은 설자리를 잃는다며 그것의 개방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나, 개방한 결과 어떠한가. 소아병적인 엄살과는 달리 우리의 것들이 한류로 불리며 선풍을 일으켰지 않은가.
그것의 원인은 많이 있겠으나, 원래 예술을 즐기고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민족성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 이웃나라를 침략하여 자신들만이 즐기는 환경을 만들려는 민족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여유가 생기면 모두가 즐기는 문화를 창조해왔다. 침략하는 일 없이 이웃나라들을 용서하며 지내왔다. 그래서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나라가 된 것이다. 그것이 한류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그런 민족성에 기인하는 능력에 새로운 기능을 터득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의 지속을 위해서는 우리의 근원을 우리의 기본적 요소를 파악하고, 그것을 살려가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생각하면 우리들의 모든 것을 규범지어 주는 것은 단군신화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우리는 단군을 잘 알지 못한다. 다 알고 있을 법한데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선 단군의 배필이 누구였으며 단군의 아들이 누구였는가.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그렇다치자. 그러한 사실도 생각해본 일 없이, 그저 단군의 자손이라는 것만 노래하고 있다. 근본을 모르는 민족이라 해도 할말이 없게 되었다. 나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아무리 보아도 환웅이 천강하기 이번의 지상에는 인간이 존재했다고 인정할 만한 내용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많은 인간들이 환웅을 환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인간이 존재했다고 가정한다면, 그들에게는 침략자일 수밖에 없는 천상의 세력을 지상에서 환영한 것일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의심을 제기하는 이야길 들어보질 못했다.
그보다 더한 것이 충청인들의 백제신화에 대한 무관심이다. 신화를 이야기 할 때 고구려 신라 가야 등의 신화는 이야기되나 백제의 그것은 거의 생략된다. 시조 온조를 고구려시조의 후손으로 위치시키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구려와 백제의 관계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상존하지 않는 이웃으로 존재하며 상대국의 함락만을 생각하는 것이 고구려와 백제가 아니었는가. 그런 백제가 독자성도 없는 신화를 신봉하며 고구려와 국력을 겨루었겠는가. 진즉 생각해 보았을 문제다.
백제가 망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보는 삼국사기는 [그 세계가 고구려와 한가지로 부여에서 나왔기 때문에 부여로써 성씨를 삼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것을 보면 백제가 고구려와 함께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라 했다. 그러며 백제왕의 성씨가 부여라는 설명을 한 것을 보면, 부여를 근원으로 한다면 고구려가 아닌 백제가 본류라 할 수 있다. 그것을 삼국사기가 고구려에 부속시켰는지도 모르는데, 백제의 땅에 사는 사람들은 그것의 근본을 따지려 해본 일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고구려 신화와 부여신화를 보면 그것의 유사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닮아도 너무 닮아있다. 부여신화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시녀가 천상의 달걀만한 정기를 받고 임신을 하자 왕이 죽이려하다 감금시켰고, 그곳에서남자를 낳자 버렸다. 그것을 돼지, 말들이 보살폈다. 왕은 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동명이라 불렀다. 활을 잘 쏘는 동명은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물고기와 자라 등을 다리삼아 부여로 도강하여 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러 기록들이 전하는 고구려신화와 다른 곳을 지적하기 어려울 정도로 구성과 내용이 닮아 있다. 그래서 두 신화를 동일한 것으로 보는 의견, 별개의 신화로 보는 의견으로 갈라진다. 동일설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고구려신화가 원전이라는 설 부여신화가 원전이라는 설 등이 말해지고 있다.
그런 논쟁이 벌어지는 강운데에도, 성씨를 부여로 하는 백제와의 관계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삼국사기를 기록한 김부식의 의견을 존중한 것인지, 신화라 황당무계한 것으로 치부한 결과인지는 몰라도, 백제시조를 고구려 왕통보에 포함시키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어쩌면 백제가 멸망하는 것과 더불어 그 신화도 추방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고구려에 포함시켰을지도 모른다. 현재로서는 백제인들이 기록한 신화가 백제신화가 없다. 그렇다 해서 백제인들이 독자적인 신화를 가지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일이다. 백제는 자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하는 신화, 백제인들의 긍지에 어울리는 신화를 가졌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백제는 멸망했어도 그 땅은 의구하며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군중들이 없었던 때가 없었음에도 그 원초를 이야기하는 신화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있다. 자신들의 근본도 모르고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신년초부터 충청인의 긍지와 단결을 이야기하는 소리는 높다, 역사속의 출ㅇ성되인의 중심적 역할을 이야기하는 전직 총장이 있는가 하면, 전국의 충청인들이 하나의 목적으로 나갈 것을 선동하는 전직 서울시장도 있었다. 그들은 우리들이 하나로 모여들 구심체적인 신화와 같은 공통사고도 정립하지 않은 체, 단결할 것만을 선동한다. 정체성도 구비하지 못하고 동질성만을 강요하는 그 이야기에서, 정통성 있는 충청인의 자존심을 엿보기보다는 선동의 공허감만이 느껴졌다.
2007년 2월22일 대일논단 백제신화의 자긍심
1980년대 전반의 일이다. 우리의 대표적 만화가가 그의 주인공에 일관성이 없다는 일본인의 질문에 쩔쩔매고 있었다. 악역의 왜군이 무원칙하게 설정되었다는 것이다. 일관성 없는 설정이 왜군의 악행보다도 나쁘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처럼 준비된 이론으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해가는 일본, 그 나라의 문화가 수입되면 우리의 것이 입지를 잃고 만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오히려 한류라는 문화가 맹위를 떨친다.
한류가 무엇이라고 단정할 능력이 나에겐 없다. 그래서 이민족들에게 우리문화가 애호되는 현상이라는 것 정도로 알고 있다. 주인공 하나도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던 우리 문화가 이처럼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작품성과 역량에서 그 원인을 구하는 것 같으나 나의 생각은 좀 다르다. 작품이 재미있다는 것은 물론 이지만, 그런 것들을 창출되게 하는 우리의 풍토와 정서가, 민족을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의 아이덴티티와 관련지어 생각해볼 문제다.
여유가 생기면 이웃을 침략하여 부를 축적하려는 나라도 있다. 어쩌면 많은 나라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침략에는 단호히 대응하면서도 이웃을 침략한 일은 없다. 대신 여유로 문화를 창조하여 같이 즐기려 했다. 이것이 확인된 우리들의 본질이다. 만일 평화를 논하는 자격증이 있다면 그것을 제일 먼저 받아야 할 나라는 우리일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정서가 창출해내는 문화이기에 민족을 초월한 공감을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평화를 원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한 한류도 영원할 것이다.
그런 우리를 규정해주는 것이 단군신화다. 허구와 사실성을 접속하는 방법으로 우리의 근본과 이상을 규정하고 나아갈 방향과 구심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단군의 후손이라는 것을 즐겨 말한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우리들의 그것에 대한 지식이다. 그 후손임을 즐겨 말하면서도 단군의 처와 자식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또 알려하지도 않는다. 아무리 보아도 환웅이 강림하기 이전의 지상에 인간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없는데도 모두가 환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선주민들이 존재했었다면 주도권의 문제에서도 생각해볼 문제다. 호기심이 아니라 우리의 근본을 규명하는 차원에서 생각해볼 문제다.
백제신화는 더한다. 그것은 신화의 토론에도 끼지 못하는데, 그것이 고구려신화에 포함된 것에 만족하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것을 소유했던 세력이 멸망했으니, 그것이 설화처럼 조롱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우월감을 만끽하는 세력이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땅에 살며 그 후손임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는 일이다. 백제의 자긍심을 충족시켜주었을 독자적인 신화를 생각해 보았어야 할 일이다. 독자적인 백제가 어찌 종속된 신화에 만족했겠는가. 독자적인 신화를 가졌기에 대등하거나 우월한 관계를 유지했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김부식은 백제의 멸망에 희열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그가 부여가 백제와 고구려의 같은 뿌리이고 백제왕의 성씨가 부여라 했다. 부여와 고구려의 신화는 그 차이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흡사하다. 그 신화로 동질성을 확보했던 부여가 소멸된 후에도, 백제왕조는 번성하고 있었다. 백제를 부여의 본류로 볼 수 있는 조건들이다. 그럼에도 백제신화는 김부식의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충청인의 단결을 호소하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역사의 중심을 말하며 단결을 주장하는데 어떤 이념의 제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터전만을 근거로 그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것은 터전의 이탈과 더불어 소실될 수도 있는 일이다. 요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응집될 수 있는 공동인식의 구심점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신화의 원상복원도 그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대일논단 2007년 2월26일
백제와 충청도
백제문화제의 활성화 방법이 논의되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부여와 공주에서 독자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이다. 분산되어 경쟁적으로 실시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통합하여 내용의 충실을 기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이 타 지역에서도 행하고 있는 모든 문화제를 어우르는 통합이 아니라는 데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통합의 원인이 유사행사이기 때문이며, 그것의 목적이 백제의 영향권으로 생각되는 중국・일본 등도 포함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설계한다는 점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백제의 모든 것을 대표할 수 있는가라는 정통성의 문제와 타 지역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말하자면 그 문화제가 포함하는 영역의 문제나 백제후예로서의 자긍심과 같은 문제다. 백제문화제를 칭하는 이상 백제권을 아우르고 그 백제의 후예로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가치관을 수립하는 일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백제는 위례성에서 건국되어 한성에서 번성하였다. 그 후 고구려의 공격으로 왕이 전사하는 위기를 피해 천도한 곳이 공주이고, 새로운 도약을 기도해서 천도한 곳이 부여였다. 말하자면 위기의 피난처가 공주이고 재흥을 기대한 곳이 부여였던 셈이다. 그러나 부여에서 멸망했기에 공주・부여는 쇠잔기의 왕도로 정의될 수도 있다.
시간적으로 보아도 백제의 678년 역사 중 공주가 63년, 부여가 122년, 도합 185년에 불과하다. 삼분의 일에도 미치지 않는다. 건국하여 번성을 이룬 것은 위례・한성의 시대였다. 서울경기 지방의 백제가 충청도의 백제보다 길었고 국력도 충실했던 것이다. 이것을 생각하면 백제문화제는 충청도가 아니라 경기서울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또 왕도와 관계없이 전라도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이런 조건들을 고려하여 추진하는 것이 모두를 아우르는 통합이고 진정한 화합을 기하는 문화제라 할 것이다. 그 한 방법으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긍정적 신화를 공유하는 일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준비 없이 공주와 부여의 문화제로 백제를 대표하려 한다면 정통성의 문제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것은 타 지역을 배제시키는 일이고, 백제에서 공주와 부여가 떨어져 나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작은 통합을 원하다 전체를 분열시킬 수도 있는 일이다. 특히 그것을 충청의 자존심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으로 삼으려 한다면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경기・서울은 백제와의 연고를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독점할 필요를 느낄 시기가 올 수도 있다. 수도권의 한없는 독점욕을 생각하면 충분히 상정할 수 있는 일이다. 백제권으로서의 가치관을 공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백제문화가 당지의 이익과 결부되는 일이 생기게 되면, 그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쟁탈전은 벌어지기 마련이다. 이미 우리는 행정수도문제로, 반대하는 집단의 허수아비를 불태운 경험도 있지 않은가.
이런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독자적인 신화를 공유하여 자긍심과 동질감을 확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백제왕조가 부여씨였고 국호를 남부여라 칭한 일이 있다. 그리고 부여의 신화는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구려의 그것과 유사하다. 이런 것들을 감안하면, 백제가 천신과 직결되는 신화를 소유했을 가능성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고구려신화에 복속시켜 놓고도 태연하지 않은가.
현재 백제문화를 소중히 간직하는 곳이 충청도이고 지리적으로도 중심에 위치한다. 즉 백제의 중심권에 위치하며 현실적 문제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충청도이기에 통합된 문화제의 기획은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독자적인 신화를 공유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긍정적인 가치관을 정립하여 제시해야 한다. 그럴 때 모두가 함께하는 행사가 활성화되고 동아시아 전부도 어울릴 수 있을 것이다.
백제와 충청도
백제문화제의 활성화 방법이 논의되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부여와 공주에서 독자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이다. 분산되어 경쟁적으로 실시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통합하여 내용의 충실을 기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이 타 지역에서도 행하고 있는 모든 문화제를 어우르는 통합이 아니라는 데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통합의 원인이 유사행사이기 때문이며, 그것의 목적이 백제의 영향권으로 생각되는 중국・일본 등도 포함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설계한다는 점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백제의 모든 것을 대표할 수 있는가라는 정통성의 문제와 타 지역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말하자면 그 문화제가 포함하는 영역의 문제나 백제후예로서의 자긍심과 같은 문제다. 백제문화제를 칭하는 이상 백제권을 아우르고 그 백제의 후예로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가치관을 수립하는 일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백제는 위례성에서 건국되어 한성에서 번성하였다. 그 후 고구려의 공격으로 왕이 전사하는 위기를 피해 천도한 곳이 공주이고, 새로운 도약을 기도해서 천도한 곳이 부여였다. 말하자면 위기의 피난처가 공주이고 재흥을 기대한 곳이 부여였던 셈이다. 그러나 부여에서 멸망했기에 공주・부여는 쇠잔기의 왕도로 정의될 수도 있다.
시간적으로 보아도 백제의 678년 역사 중 공주가 63년, 부여가 122년, 도합 185년에 불과하다. 삼분의 일에도 미치지 않는다. 건국하여 번성을 이룬 것은 위례・한성의 시대였다. 서울경기 지방의 백제가 충청도의 백제보다 길었고 국력도 충실했던 것이다. 이것을 생각하면 백제문화제는 충청도가 아니라 경기서울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또 왕도와 관계없이 전라도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이런 조건들을 고려하여 추진하는 것이 모두를 아우르는 통합이고 진정한 화합을 기하는 문화제라 할 것이다. 그 한 방법으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긍정적 신화를 공유하는 일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준비 없이 공주와 부여의 문화제로 백제를 대표하려 한다면 정통성의 문제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것은 타 지역을 배제시키는 일이고, 백제에서 공주와 부여가 떨어져 나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작은 통합을 원하다 전체를 분열시킬 수도 있는 일이다. 특히 그것을 충청의 자존심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으로 삼으려 한다면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경기・서울은 백제와의 연고를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독점할 필요를 느낄 시기가 올 수도 있다. 수도권의 한없는 독점욕을 생각하면 충분히 상정할 수 있는 일이다. 백제권으로서의 가치관을 공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백제문화가 당지의 이익과 결부되는 일이 생기게 되면, 그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쟁탈전은 벌어지기 마련이다. 이미 우리는 행정수도문제로, 반대하는 집단의 허수아비를 불태운 경험도 있지 않은가.
이런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독자적인 신화를 공유하여 자긍심과 동질감을 확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백제왕조가 부여씨였고 국호를 남부여라 칭한 일이 있다. 그리고 부여의 신화는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구려의 그것과 유사하다. 이런 것들을 감안하면, 백제가 천신과 직결되는 신화를 소유했을 가능성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고구려신화에 복속시켜 놓고도 태연하지 않은가.
현재 백제문화를 소중히 간직하는 곳이 충청도이고 지리적으로도 중심에 위치한다. 즉 백제의 중심권에 위치하며 현실적 문제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충청도이기에 통합된 문화제의 기획은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독자적인 신화를 공유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긍정적인 가치관을 정립하여 제시해야 한다. 그럴 때 모두가 함께하는 행사가 활성화되고 동아시아 전부도 어울릴 수 있을 것이다.
미완성문 백제와 기록물
백제가 어떤 나라였는가를 이야기할 수 있는 전문지식이 나에게는 없다. 그렇다 해서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지식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비록 얕고 좁기는 하지만 관심을 가져서 인지 느끼는 것은 많다. 그것도 우리의 기록이 아니라 일본의 기록을 통해 접하는 기회가 더 많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이 그것이 공정하게 평가되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일본의 경우는 제국주의자, 혹은 황국사관학자들의 왜곡이라고 치부해버리며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는 날을 기다릴 수가 있다. 그러나 백제사를 연구한다는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에는 견디기 어렵다.
광개토왕비를 세운 장수왕이나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의 백제관, 『고사기』나 『일본서기』를 쓴 일본인들의 그것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다. 장수왕은 백제를 백잔 백제왕을 잔주라는 부정적인 호칭으로 부르고, 백제 자체를 고구려의 속국으로 단정하고 만다. 김부식은 백제의 멸망을 당연시 하는 듯 부정적인 시각을 감추지 않으며 [그 망하는 것이 또한 당연한 일이로다] 했다. 『고사기』는 백제를 왜에 말 같은 것을 바치는 [둔가屯家]로 단정하며, 한자를 전하고 한문을 일깨워준 아직기나 왕인도 조공물로 취급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잘못된 기록이다. 백제는 패망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평가되어도 괜찮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과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현재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과의 독도문제 중국과의 역사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임에도 태연하다. 백제의 후예임을 부정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이다. 충청도인의 온유하며 강직한 인품을 선거에 이용하려던 사람들이 실수하여 핫바지로 표현하거나 대세에 따라가면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하면 참기 어려워하면서도 잘못된 기록에 대해서는 태연하다.
장수왕이나 왜가 백제를 경시하는 것은 자국의 자존심을 세우려는 관념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라 이해못할 것도 없다. 그러나 김부식의 백제관은 문제가 심하다. 삼국이 멸망한 후인 고려시대에 객관적인 입장을 취한다며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히 [핫바지론]이나 [대세 추종논]처럼 객관을 위장한 감정론이기 때문이다. 하바지론이나 대세 추종론이 백제를 일컬어 이야기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기서울이 백제에 후예라는 의식이 희박한 점을 감안하면, 민감할 수밖에 없는 지역은 자명해진다. 백제의 영역을 확실히 말할 수는 없으나 서울 경기 충정 전라의 일부로 구성된 나라이기 때문에 김부식의 핫바지론적 사관은 현대의 그것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그래도 그것은 일정지역을 타지역과 구별하여 소정의 목적을 달성하려했던 점에서는 동질적이다. 마치 왜가 신라와 백제를 야만으로 취급하여, 자국의 후진성을 호도하려했던 것과 같은 효과를 보았을 것이다.
이야기가 재미있으려면 악인과 선인이 등장하고, 치열한 경쟁을 하다 악인이 처참하게 멸망해야한다. 그래서 그런지 어릴 때 배운 역사교과서 같은 것을 보면, 승자에 모든 정통성을 부여하고 있다. 차전놀이의 설명에서 본 것이나,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를 지렁이로 표현하고 있었다. 물론 지렁이가 나쁜 표현은 아니다. 용이나 뱀이나 지렁이가 같이 취급되는 것이 신화나 설화의 세계인 이상 그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그 설명에서는 나쁜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최근 유행하는 역사드라마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고구려의 기상을 강조하는 것은 좋으나, 신라와 백제를 비굴한 세력으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고구려가 중국을 대상으로 당당한 외교를 펼쳤다면 신라나 백제 또한 그러했기 마련이고, 고구려가 그러하지 못했으면 그렇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며, 그 사정은 신라나 백제도 마찬가지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당면의 입장에 사로잡혀 사실을 왜곡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공평성의 결여이고 객관성의 부족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그것을 보고 즐긴다는 것이다. 기록은 영원하지만 그것을 읽는 자의 능력에 따라 그 의미는 변하는 것이다. 또 변해야 한다.
독도문제의 현재 (2007년 4월 11일 대전일보, 권오엽교수의 독도이야기)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새삼스러운 일이나, 이렇게 확인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일본이 그것을 죽도라 부르며 소유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죽도는 울릉도의 다른 이름이었다. 일본은 울릉도를 죽도 또는 기죽도라고 부르며 다른 섬인 양하기도 했다. 동해에 울릉도 이외의 섬이 있는 것처럼 하여 울릉도를 차지하려는 속셈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그것 때문에 외교전을 벌리다 조선의 땅이라고 합의를 본 일이 있다. 조선과의 교류를 독점하여 막대한 이익을 보던 대마도의 농간을 원인으로 하는 일이었으나 결국에는 일본도 조선의 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던 일본이 다시, 그때 일본이 합의한 것은 울릉도의 소유였지 독도의 소유는 아니었다며 독도의 소유를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독도의 존재도 알지 못하다 조선말에 겨우 일본을 통해서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때까지의 독도는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아, 주인이 없는 무인도를, 일본이 먼저 선포했으므로 일본의 소유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말하는 독도는 울릉도 바로 앞에 있는 죽서도였다 한다. 누가 읽어도 독도가 우리의 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는데도, 일본은 그것을 부정하고 있다. 아예 기록의 신뢰성 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기나라 기록의 해석에는 왜곡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 기록이야말로 읽어보면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음에도 막무가내다.
일본은 자기변명에 능한 나라다. 부분적인 가능성으로 전체를 뒤엎는 재주에 능하고, 그 재능으로 재미를 본 경험이 많다. 그것을 믿고 독도의 소유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강자의 논리가 진실이었던 제국주의 사상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변설은 진실을 만나면 말장난에 그치고 마는 법이다.
우리는 그 진실을 확인해야 한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기록들을 바탕으로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그 기록의 내용이 일본인들의 주장과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그것이 한일 친선은 물론 세계 평화를 이루는 길이며, 일본의 행복에도 기여하는 일이다. 억지와 간계로 친선과 평화를 위장하는 시대, 폭력으로 타국의 권리를 짓밟는 시대가 다시 와서는 안 된다.
독도는 처음부터 우산국의 생활권 안에 포함되어 있다가, 512년에 이사부의 정벌에 의해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일본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우산국을 울릉도에 한정하려한다. 경제적 실리도 없는 무인도를 인식했을 리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대인에게는 경제성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따로 있었다. 종교적 가치였다. 독도가 우산국에 포함된다는 사실은 『삼국사기』 등의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음에도 그것에 대한 노력은 별로 없었다. 독도를 포함하는 우산국을 처음으로 기록한 『삼국사기』를 잘 살펴보면 독도가 우산국에 포함되어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일본은 그 의미를 외면하려 하고 우리는 무감각했다. 그 기록의 의미를 알고 역설하는 사람도 있으나 극히 소수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물이라 한다. 독도가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에 안주하지 말고, 기록들이 시사하는 내용을 잘 정리하여 이민족의 망발을 방지했어야 했다. 기록이 분명함에도 일본에게 허점을 보였다면 크게 반성하고 각성해야 할 것이다.
독도가 아무리 우리 땅이라 해도 그 논리를 정립해두지 않으면, 탈취에 능한 일본의 준비된 논리 앞에서 무기력해질 수도 있다. 독도에 대한 소유욕은 일본이 우리보다 더 강하다. 그들은 논리를 정비했는지 우리에게 논리적 대응을 부탁하는 여유까지 부린다. 이런 상황이다. 우리는 방심하지 말고 우리의 논리를 정립해야 한다.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그 나름대로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물론 그것을 반박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다른 자료를 근거로 하는 경우도 있으나, 같은 자료를 근거로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따라서 문제는 그 자료들을 어떻게 읽고 해석하는가에 있다. 지금까지는 부분의 기록이나 직접적인 표현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방법을 달리하여 전체적인 구조와 흐름을 중시하면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은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007년 3월36 대일논단
납치의 왕국
일본이 급한 모양이다. 급기야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은 침략전쟁 시 위안부를 동원한 일도 없고, 그것에 관한 결의안이 미국 하원을 통과한다 해도 사과하지 않겠다한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내각에서 결의까지 했다.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스스로가 면죄부를 준 셈이다. 그런 일본을 보고 있노라면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라 항의하며 사과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 같다. 마지못해 사과를 한다 해도 그것이 진심이 아니며 다시 되풀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이 같은 언동은 일부 지도자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일본인이 그런 속내를 가지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처음에는 삼가다가 조금이라도 허점을 찾아내면 침략의 본능을 발휘하려는 나라가 일본이다. 과거를 반성한 일이 있다면 취할 수 없는 행위다. 힘에 밀리면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척하다 새로운 기회를 노리는 방법에 익숙한 것 같다. 자기를 정당화하는 논리의 개발에만 신경을 쓸 뿐 침략행위로 저지른 범죄 대해서는 일체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것으로 구축한 부를 자랑으로 여길 뿐이다. 최근에는 일본의 시혜를 받고 일가를 이룬 사람들의 변호성 발언도 가끔 나와, 일본은 신명이 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의 일본은 재무장론은 물론 북한의 선제공격로 주저하지 않는다.
일본의 우리에 대한 자세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시혜를 원하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약탈과 납치해버리곤 했다. 침략도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 그들이었다. 우리는 총칼을 흔드는 위협과 공갈에 직면하면 교린이나 우호를 핑계로 무너지곤 했다.
현재의 일본은 1970년대에 이루어진 북한의 납치문제에 적극적이다. 매일 같이 비슷한 보도를 반복하며 북한을 비난하고 있다. 납치란 있어서는 안 되는 범죄라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일본의 언론을 보면 도가 지나치고 방향도 틀린 것 같다. 보도의 목적이 진상의 규명이나 해결에 있는 것 같지 않다. 북한을 부정하는 방법으로 자신들의 과거를 은폐하는 것 같다. 조롱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형평성을 잃고 있다. 그것을 보는 일본인은 북한을 증오하게 되어 있다. 과거의 일본인들이 전쟁터에 즐겨 나간 것도 이런 선동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북한의 납치문제는 2002년 9월에 열린 조일 수뇌회담에서 해결된 일이었다. 그 자리에서 북한의 절대 권력자가 납치를 인정하고 사과했으니 해결된 것 아닌가. 수많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사과하기는커녕 은폐하기에 바쁜 일본으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듣는 자의 귀를 의심할 정도의 통 큰 사과였다. 그리고 북한은 그들을 일시귀국까지 시켰으니, 일본은 북한의 그 솔직담백한 사과와 뒤처리에 감사했어야 했다. 그러나 일본은 약속을 파기하고 일시귀국자들을 돌려보내지 않았다. 거기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은 1970년대에 해변에서 실종된 자는 모두를 북한에 납치된 것이라 주장한다. 실종을 신고하면, 얼굴을 가리고 음성을 변조한 증언자가 나타나고, 일본정부는 그 증언을 바탕으로, 납치인증서를 발행한다. 약 170여건에 이른다하니 대단한 숫자다. 그러나 일본의 과거를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만도 없다. 일본의 납치행위는 국제시장의 노예가격을 폭락시킬 정도였다. 남여 노소의 목을 새끼줄로 엮어서 내다 팔아먹었던 일본이다. 끌려가며 울부짖던 통곡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다. 그런 방법으로 부를 구축한 일본이라, 과거를 부정하는 것은 자기를 부정하는 일이 될 지도 모른다.
일본은 항상 과거를 잊고 미래를 이야기하자 했다. 일리가 있어 동조자도 많았다. 그런 일본이 갑자기 1970년대의 문제를 들고 나온다. 1970년대만을 미래로 본다는 것일까. 아니면 타국을 비난할 호재를 처음으로 만나서일까. 1970년대의 일이 미래를 여는 조건이라 이야기 하는 것이라면 1940년대 이전의 일도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대일논단 2007년 2월26일
백제와 충청도
백제문화제의 활성화 방법이 논의되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부여와 공주에서 독자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이다. 분산되어 경쟁적으로 실시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통합하여 내용의 충실을 기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이 타 지역에서도 행하고 있는 모든 문화제를 어우르는 통합이 아니라는 데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통합의 원인이 유사행사이기 때문이며, 그것의 목적이 백제의 영향권으로 생각되는 중국・일본 등도 포함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설계한다는 점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백제의 모든 것을 대표할 수 있는가라는 정통성의 문제와 타 지역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말하자면 그 문화제가 포함하는 영역의 문제나 백제후예로서의 자긍심과 같은 문제다. 백제문화제를 칭하는 이상 백제권을 아우르고 그 백제의 후예로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가치관을 수립하는 일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백제는 위례성에서 건국되어 한성에서 번성하였다. 그 후 고구려의 공격으로 왕이 전사하는 위기를 피해 천도한 곳이 공주이고, 새로운 도약을 기도해서 천도한 곳이 부여였다. 말하자면 위기의 피난처가 공주이고 재흥을 기대한 곳이 부여였던 셈이다. 그러나 부여에서 멸망했기에 공주・부여는 쇠잔기의 왕도로 정의될 수도 있다.
시간적으로 보아도 백제의 678년 역사 중 공주가 63년, 부여가 122년, 도합 185년에 불과하다. 삼분의 일에도 미치지 않는다. 건국하여 번성을 이룬 것은 위례・한성의 시대였다. 서울경기 지방의 백제가 충청도의 백제보다 길었고 국력도 충실했던 것이다. 이것을 생각하면 백제문화제는 충청도가 아니라 경기서울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또 왕도와 관계없이 전라도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이런 조건들을 고려하여 추진하는 것이 모두를 아우르는 통합이고 진정한 화합을 기하는 문화제라 할 것이다. 그 한 방법으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긍정적 신화를 공유하는 일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준비 없이 공주와 부여의 문화제로 백제를 대표하려 한다면 정통성의 문제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것은 타 지역을 배제시키는 일이고, 백제에서 공주와 부여가 떨어져 나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작은 통합을 원하다 전체를 분열시킬 수도 있는 일이다. 특히 그것을 충청의 자존심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으로 삼으려 한다면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경기・서울은 백제와의 연고를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독점할 필요를 느낄 시기가 올 수도 있다. 수도권의 한없는 독점욕을 생각하면 충분히 상정할 수 있는 일이다. 백제권으로서의 가치관을 공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백제문화가 당지의 이익과 결부되는 일이 생기게 되면, 그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쟁탈전은 벌어지기 마련이다. 이미 우리는 행정수도문제로, 반대하는 집단의 허수아비를 불태운 경험도 있지 않은가.
이런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독자적인 신화를 공유하여 자긍심과 동질감을 확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백제왕조가 부여씨였고 국호를 남부여라 칭한 일이 있다. 그리고 부여의 신화는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구려의 그것과 유사하다. 이런 것들을 감안하면, 백제가 천신과 직결되는 신화를 소유했을 가능성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고구려신화에 복속시켜 놓고도 태연하지 않은가.
현재 백제문화를 소중히 간직하는 곳이 충청도이고 지리적으로도 중심에 위치한다. 즉 백제의 중심권에 위치하며 현실적 문제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충청도이기에 통합된 문화제의 기획은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독자적인 신화를 공유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긍정적인 가치관을 정립하여 제시해야 한다. 그럴 때 모두가 함께하는 행사가 활성화되고 동아시아 전부도 어울릴 수 있을 것이다.
2007년 1월22일 대일논단 백제신화의 자긍심
1980년대 전반의 일이다. 우리의 대표적 만화가가 그의 주인공에 일관성이 없다는 일본인의 질문에 쩔쩔매고 있었다. 악역의 왜군이 무원칙하게 설정되었다는 것이다. 일관성 없는 설정이 왜군의 악행보다도 나쁘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처럼 준비된 이론으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해가는 일본, 그 나라의 문화가 수입되면 우리의 것이 입지를 잃고 만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오히려 한류라는 문화가 맹위를 떨친다.
한류가 무엇이라고 단정할 능력이 나에겐 없다. 그래서 이민족들에게 우리문화가 애호되는 현상이라는 것 정도로 알고 있다. 주인공 하나도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던 우리 문화가 이처럼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작품성과 역량에서 그 원인을 구하는 것 같으나 나의 생각은 좀 다르다. 작품이 재미있다는 것은 물론 이지만, 그런 것들을 창출되게 하는 우리의 풍토와 정서가, 민족을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의 아이덴티티와 관련지어 생각해볼 문제다.
여유가 생기면 이웃을 침략하여 부를 축적하려는 나라도 있다. 어쩌면 많은 나라가 그럴지도 모른다.
- 最終更新:2009-08-23 08: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