このWIKIを編集するにはパスワード入力が必要です

認証パスワード
RSSフィード

kw-270

죽도및 울릉도 [나의 책]  
2008/05/31 09:37

http://blog.naver.com/kwonoyub/110031613057 
이 포스트를 보낸곳 ()


5성영제 3-6

竹島は、森々れる北海の波上、天涯―沫の巖嶼たるのみ。しかも、日本海々戰似依手、全世界に紹介せられ、永く戰史にその名を貽巣に至れり。之より先崎數月、該鳥は、本邦領土に編人、全時に鳥根縣所屬に定めらる、亦以て名譽の紀念となすへし。松永鳥根縣知事は、昨夏、先津之を視察し、次て、今春、余等に命して、再ひ之か視察調査を爲さしめらる。子ヽ煮於手か、余及費その他の視察員並に便乗者―行四十余名、―小滊船第二隠岐丸を艤して航程に上る、時恰も荒天三月、海上穏か鳴らす、怒濤狂瀾の澎湃鞺韜として、動もすれば、進路を妨けんとするものあリしも。幸に船長以下の熟錬と盡瘁戸に顛手、險を冒し、苦を忍ひ、遂にその目的を達し、進んて韓國鬱陵島―班の視察を了へ、その視察調査せしところ復命せり。當時を回想をすれば、轉た凄愴たるものなきにあらす、編者奥原君は、筆を載せて同行セ氏―人なり、今般之か復命書等を參酌し、並に竹島及鬱陵島を編纂公にせらる。而して、その〇革情勢を叙すること最も適實、盖し、世に資益するところ尠空サルを信巣、その勞多とすへし。―言以て序となす



明治三十九年七月



島根縣事務官

神西由太郎



凡例

―、書題して「竹島及び鬱陵島」といふ。即ち、両島の地勢、物産、生業、浴革等の現况を叙述せるものなリ。

―、竹島は、日本海の中心にあり手、住民なく、樹木なき岩嶼にして、古來、松島の名稍を以て僅に、當地方の漁人間に知られたるものなり。

―、鬱陵島は、韓國江原道の海上にある大島にして、樹木鬱蒼(大竹を産する由傳振れども誤なり)多數の住民を有し、古來、竹島の名稍を以て、當地方に洽く知られるものあリ。

―、元來、地理に關する事項は、實地を踏査瀬されば、精確を缺くこと少からず。この両島の如きも、水路誌に、鬱陵島―名松島と掲載せられてよリ、從來之記録に見にたる竹島の記事を以て、直ちに新竹島のこと、誤解セルも少から図、これ、余か竹島の沿革につきて、特に詳説せし所以なり。

―、本島の材料は、余暇、余春、竹島視察員―行に加張り手、親しく踏査セ氏者、及び視察員の復命書によリ、加ふるに、隠岐島の文書、新竹島經營者中井養次郎氏の談話等を參酌して編纂せり。

―、本書の資料莵集並に出版に津さては、視察員の―人中島善夫氏に負ふ處多し。子ヽに特記して、ろの厚意を謝す。



明治三十九年五月二十八日大海戰―周年紀念日

奧原碧雲識



성영제 27-28

第二 気候

―、温度及雨量

絶海無人の岩嶼にして、夏季漁獵期の外、渡航するもの泣きを以て、温度の高低、氣象の如何を精査する能はず問いへ度も、毎年梅雨期より七月頃に至るの間海驢漁獵の爲渡航競るもの、言に依れば、島根縣沿海地方に比して、稍高温なる画如く、比輘的雨量は少けれども濃霧の日多し問い不。視察の當日、即ち三月二十七日午前十時における氣温氣壓を、境及び濱田測候所の氣温氣壓に對照すれば左の如し。

境氣温七度二氣壓七百六十八・五ミリメ‐ト儿

濱田氣温七度九氣壓七百六十七・九ミリメ‐トル

竹島氣温八度四氣壓七百六十六ミリメ‐トル(温度は攝氏な用ふ、以下同じ)



第三 生物

―、動物

本島は、生木なき無人の岩島なるを以て、陸産動物は甚だ僅少なれども、海産動物は比輘的夥多なる課如し。今回視察の實見したるものを擧ぐれは左の如し。

アツカ カモノ ウ カメノテ カキ フデツボ アハヒ ユノガセラ イガヒ イソキテヤク カセゴ等



また、出漁者の言によれぱ、

大鼠鷹雀 カハラスズメ 黒鳰 赤蜻蛉 蝿 蚋

鰺 トビウヲ クヅダヒ 鰈 平目 鰤の兒 サザエ ニナ クラゲ



等も棲居すといふ。

二、植物

本島は、岩骨露出して土壤は僅に上平を彼ふに過ぎ去れば、全島一の樹木なく、雜草の處々に生長せるのみ。視察の際、東嶼の頂上に登りて、實見せしもの左の如し。イタドリ べソケイサウ ハマナデシコ 八マニガナ

海藻には 海莦 ホンダハラ グラシル一ビア テソグサ コツノマタ

等なリき、西嶼は登攀するを得ざリしも、東嶼と大同小異なるべし。

東嶼の頂上に、稍平担なる土地あり、利の面積僅煮二三反歩に過其ざれども、出漁者の食料とすべき蓏茱類等を越培するを得べぎ見込あり。今回視察念として神西事務官東島司岡技手等は岩土を穿掘して土と共に松苗數株を移植せり。









1 노은진 26-29

禁制に候條、向後, 右島之儀も、同樣相心得, 渡航之間敷候事. (p.26-29)

明治十六年に至り、更に日韓兩國政府の談判ありて、わが往漁の舟を還して,再び渡航することなからしめ,明かに竹島を以て朝鮮の所屬となしぬ。

【메이지 16년에 이르러 다시 한번 일한양국 정부의 담판이 있었고 갔던 우리 어선을 돌아오게 해 재차 바다를 건너는 일이 없도록 했음에, 명확하게 다케시마를 조선의 소속이라 하지 않았다.】



以上諸種の引用書に見えたる記事は、すべて鬱陵島の記事にして、周回一浬に滿たるリアンコール列岩にあらざることいふまでもなし。

【이상, 여러 종의 인용서에 나타난 기사는 전부 울릉도의 기사로 하여, 주위 1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리안코르 열암이 (다케시마가) 아니라는 것까지도 없다.】



されば、舊記に見えたる竹島は鬱陵島にして、同島を松島と稱せし記事は、一も發見する能はず。

【그렇다고, 옛 기록에 나타난 다케시마는 울릉도로 하고, 그 지역을 마츠시마라 부르게 했다는 기사는 하나도 발견되지 아니했다.】



ただ、絶海の孤島なるを以て、學者のこれを踏査したるものなく、無學なる漁夫の言を聞きて、想像的に、日本海中に松島竹島の二島ありとの臆說によりて、はしなくも誤謬を傳ふるに至りしものなり。

【그저, 절해의 고도란 것을 가지고 이를 답사하는 학자도 없이, 배우지 않은 어부의 말을 듣고서 상상으로 일본해중에 마츠시마, 다케시마의 두 섬이 있다는 억설에 의해, 뜻밖에도 오해를 전하는 것에 이르게 되었다.】



隱州視聽合記に鬱陵島卽ち竹島を以て、無人島にして、「日本之乾地以此州爲限矣」とあるを見れば、二百五十年以前には、住民最も稀少なりしか、或は眞に無人島なりしやもはかるべからず。

【인슈시청합기에 울릉도 즉, 죽도를 가지고 무인도로 하여, 「일본의 건방향은 인슈로서 그 한계를 삼는다」라고 함을 보면, 250년 이전에는 주민 중에서 제일 희소해졌다고 밖에, 혹은 정말 무인도가 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ただ漁期中に渡航するのみにて)而して、同書の編者は、この島を以て、日本海西北に於けるわが領土の極點となせり。

【그저 어획기중에 도항할 뿐인데 】그리하여, 이 책의 편찬자는 이 섬을 가지고 일본해 서북에 있는 우리 영토의 극점이라고 만들었다.



その後、日韓兩國民の渡航いよいよ頻繁をなり、韓人は本國に近さを以て、續々渡航者增加し、遂に東南海岸に出で、日本人占有の漁區に侵入し、ここに兩國漁民の紛擾を生し、日本人は衆寡敵せざるを以て歸航の止むを得ざるに至り、優柔軟弱なる德川幕府の外交政策を相俟ちて、竹島卽ち鬱陵島は全くわが領土をはなれて、朝鮮の版圖に歸し、伯州地方の漁民等が苦心慘憺たる對外的經營も、空しく水泡に歸して、また顧みるものなさに至れり。



【그 후, 일한 양국민의 도항이 속속 빈번해져, 한인은 번국과 가까움을 이유로 속속 도항자가 증가하여 끝내 동남쪽 해안에서 나가 일본인 점유의 해구에 침입해 여기서 양국어민의 분요가 생겨나 일본인은 적은수로 많은 수를 대항하지 못하고 귀항하지 않으면 안 되는 데에 이르러 우유연약해진 도쿠가와 막부의 외교정책과 더불어서 죽도 즉 울릉도는 완전히 우리 영토에서 풀려나서 조선의 판도로 돌아가 하쿠슈 지방의 어민 등이 고심참담하게 나타낸 대외적경영도 보람 없이 수포로 돌아가 다시 뒤돌아보는 일이 없음에 이르렀다. 】



邇來石州沿海の人, また渡航を企てしも、幕府の禁制にあひ、天保以來數十年間、竹島は殆んど本邦人に忘却せられ、海軍水路部の朝鮮水路誌及び海圖に、鬱陵島一名松島として發表せられしより、リアンコール岩は、自然舊記の竹島にあたるものと誤認せられ而して、竹島は旣に元祿中より朝鮮の版圖と認められし故、リアンコール岩をも朝鮮の版圖と認むるに至れるなり。

【이래 세키슈 연해의 사람이 다시 기도해도, 막부의 금제를 만나 텐포이래 수십년간, 다케시마는 거의 본방인에게 잊혀져 해군수로부의 조선수로지 및 해도에 울릉도의 일명 마츠시마로서 발표된 것에서, 리앙코르 암은 자연히 옛 기록의 다케시마에 해당하는 것으로 오인받아 이리하여 다케시마는 이미 겐로쿠 중기보다 조선의 판도로 인정되고 고로 리앙코르 암을 조선의 판도로 인정하는 것에 이르게 되었다.】



然るに、明治三十六年伯州東伯郡小鴨村中井養三郞氏(現令隱岐國西鄕居住)リヤんコ島(新竹島)の海驢捕獲業を企圖するや、同鄕の人、小原陸軍步兵軍曹大にこれを替し、蹶然舊記、自ら隊長となり、巾八尺長四間の魚舟に乘じ日本海の荒浪を蹴頗りて、島谷權藏以下の丈夫七人を率るて、リヤんコ島に上陸して、はじめて日章旗を岩上に飜したるは、明治三十六年五月某日なりき。

【하지만 메이지 36년 하쿠슈 토하쿠군 코가모촌의 나카이 요사부로씨(현 오오키 지방 사이고 거주)가 리안코섬(현 다케시마)의 강치 포획업을 기획하고 동향사람인 오하라 육군보병군조대가 찬성해 돌연히 옛 기록을 깨달아 스스로 대장이 되어 건팔척장사간의 고깃배를 타고 일본해의 거친 물결을 헤쳐 시마타니 권장이하 장부 7명을 끌고 리앙코 섬에 상륙해서 처음으로 일장기를 바위 위에 휘날려 보인 것은 메이지 36년 5월 모일이 되었다.



偶、島前の石橋松太郎氏部下の漁夫、また渡航してともに捕獲に従事せしも、準備不完全のため目的を達せず、翌年の漁期を待ちて大発展を期しつつ、歸港することとなれり。

【우연히, 섬 앞에서 이시바시 마츠타로 씨의 부하 어부와 다시 도항하여 함께 포획에 종사 하게 되었음에도 준비가 불완전하다는 이유로 목적을 달성하지 않고 다음해 어획기를 기다려 대 발전을 기하고 귀항할 수 있게 되었다.】



かくて、海驢捕獲業の有利なるを知り、三十七年の漁期には、各方面より續々渡航し、競争濫獲の結果、種々の弊害を認めたる中井養三郎氏はリャンコ島を以て朝鮮の領土と信じ、同國政府に貸下請願の決心を起し、三十七年の漁期終わや、直ちに上京して、隠岐出身なる農商務省水産局員藤田勘太郎氏に圖り、牧水産局長に面會して陳述する所ありき。

【이리하여, 강치 포획업에 유리해진 것을 알고 37년의 어획기에는 각 방면에서 속속 도항하여 경쟁 남획한 결과, 갖가지 폐해를 인지한 나카이 요사부로 씨는 리앙코 섬을 조선의 영토라고 믿고 본국정부에 임대신청의 청원결심을 일으켜 37년의 어획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상경하여 오오키출신인 농상무성수산국원 후지타 칸타로씨를 만나고, 목수산국장을 면회해 진술한 바가 있다. 】



同氏またこれを賛し、海軍水路部につきて、リャンコ島の所属を確めしむ。

【그 또한 이를 찬성해 해군수로부에서 리안코 섬의 소속을 확인했다.】



中井氏即ち肝付水路部長に面會して、同島の所属は、確乎たる徴證なく、ことに、日韓両本國よりの距離を測定すれば、日本の方十浬近し、加ふるに、日本人にして、同島經營に従事せるものある以上は、日本領に編入する方然るべしとの説を聞き、中井氏は遂に意を決して、リャンコ島領土編入並に貸下願を、内務外務農商務三大臣に提出せり

【나카이씨는 바로 간부수로부장을 면회하고 이 섬의 소속은 확실하게 이를만한 증거가 없어, 이에 일한 양 본국에서의 거리를 측정하면 일본 쪽이 10리 가깝고 더하는 것에 일본인이 하여, 이 섬의 경영에 종사하는 것이 있는 이상은 일본령에 편입하는 쪽이 그러해야한다는 설을 듣고, 나카이씨는 결국 뜻을 정하고 리안코 섬 영토 편입 및 임대신청을 내무외무농상무의 삼 대신에게 제출한다.



りゃんこ島領土編入並に貸下願

(량코섬 영토 편입 및 임대신청)



隠岐列島の西八十五浬、朝鮮鬱陵島の東南五十五浬の絶海に俗にりゃんこ島と称する無人島有之候、周囲各約十五町を有する甲乙二ヶの岩島中央に対立して一の海峡をなし大小数十の岩礁点々散布して之を囲繞せり中央の二島は四面断岩絶壁にして高く屹立せり其頂上には僅に土壌を冠り雑草之に生ずるのみ、全島一の樹木なし海辺彎曲の処は砂礫を以て往々浜をなせども屋舎を構え得べき場所は甲嶼の海峡に面セル局部僅に一ヶ所あるのみ甲嶼半腹凹所に潴水あり茶褐色を帯ぶ乙嶼には微々たる塩分を含みたる清冽の水断岸渭滴仕候船舶は海峡を中心として風位により左右に避けて碇泊せば安全を保たれ候。

【오오키 열도에서 서로 85리, 조선 울릉도의 동남으로 55리의 절해에 일반적으로 량코섬이라고 칭해지는 무인도로 있으니, 주위가 각각 약 15개의 마을을 가진 갑․을 2개의 바위섬이 중앙에 대립하고 하나의 해협을 이루어 크고 작은 수십 개의 암초가 점점이 산포한 것을 둘러싸인 중앙의 두 섬은 사면 단암의 절벽으로 높게 솟아있고 그 정상에 겨우 토양을 쓴 잡초가 나고 있을 뿐, 섬 전체에 나무가 하나도 없어 해변과 굽은 곳은 자갈이 때때로 바다를 이루어도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장소는 갑 섬의 해협에 면한 한 부분에 한 곳 있을 뿐, 갑섬의 반복된 오목한 곳에는 지하수가 있어 다갈색의 띠를, 을 섬에는 미미한 염분을 함축한 청렬한 물이 언덕아래 강이 되어 쌓이고, 선박은 해협을 중심으로 풍향에 의해 좌우로 피해서 정박의 안전을 유지하고 있다.】



本島は本邦より隠岐列島及び鬱陵島を経て朝鮮江原、咸鏡地方に往復する船舶の航路に当たれり若し本島を経営するものありて人之に常住するに至らば夫等船舶が寄泊して薪水食糧等万一の欠乏を補ひ得る等、種々の便宜を生ずへければ今日暇駸々乎として盛運に向ひつつある処の本邦の江原、咸鏡地方に対する漁業貿易を補益する所少なからずして本島経営の前途最も必要に被存候。

【본 섬은 본방에서 오오키 열도 및 울릉도를 거쳐 조선 강원, 함경지방을 왕복하는 선박의 선로에 있어 l 섬을 경영하는 것에 있어서 사람이 상주함에 이르르면 선박이 머무르고 땔나무와 물, 식량 등 만일의 경우를 보충하는 등, 여러 가지의 편의를 얻게 하면 오늘 빨리 불러서 행운이 계속 향하고 있는 곳의 본방의 강원, 함경지방의 대한 어업무역을 많이 보강해 본 섬의 경영의 전도 중 가장 필요하다.】



本島は如斯絶海に屹立する最爾たる岩島に過ぎざれば従来人の顧るもなく全く

放委し


陨ό有之候然鱠é私儀鬱陵島往復の途次ellspacing="0" cellpadding="0" style='border-collapse:collapse;border:none;'>
<TR>
th="510" height="13" valign="middle" bgcolor="#ffffff" style='border-left:none;border-right:none;border-top:none;border-bottom:none;padding:1.4pt 1.4pt 1.4pt 1.4pt'>
S=HStyle0 STYLE='text-align:left;line-height:120%;'><SPAN STYLE='font-family:"굴림";'>放委し</SPAN></P>
</TR>
</TABLE><SPAN STYLE='font-family:"굴림";'>陨ό</SPAN>有之候然鱠é私儀鬱陵島往復の途次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

【본 섬은 이런 절해에 높이 솟은 최리의 바위섬에 풍취가 넘쳐 종래 사람의 돌아보는 것도 없이 완전히 방외시 되어 왔다. 어떠한 처사도 울릉도를 왕복하는 도중 만나는 이 섬에 묵어 강치가 엄청나게 살고 있음을 보고 허무하게 방외시 되어 온 여하에도 유감스러움을 견디면서부터 이래로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계획해 메이지 36년에 이르러 단연 뜻을 정하고 자본을 투자해 고기잡이 회사를 세워 인부를 옮겨 어구를 준비하고 앞장서 강치잡이에 착수하자 당시 사람들은 무모함을 크게 조소한 시작에서 절해불편의 무인도에 신규사업을 기도해 계획이 어긋나 설비도를 틀리는 바가 있어 벗어나지 못하고 게다가 용도판로가 또한 확인되지 않아 허무하게 허다한 자본을 잃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은 결과 올해 본년 수렵법 제정에 발명된 바가 있어 판로도 열수 있거나, 그리하여 가죽을 소금에 절여 소가죽 대용으로서 대단히 사용이 많아 신선한 지방보다 채취한 기름은 품질과 가격 모두가 경유에 뒤떨어지지 않고 그 지게미는 충분히 짜내면 교의 원료로 되고 고기는 가구로 만들어서 뼈와 함께 귀중한 비료 등으로 확실시 되어 곧바로 본섬의 강치 잡이의 장래성이 있어 이리하여 본 섬 밖의 강치잡이로 일으킬 수 있는 키워나감에 도저히 가망이 없어 해산에 이르러ㅡ고, 아직도 조사를 거쳐 이를 가지고 오늘날 확신하는 어려움도 일본해의 요충과 맞으면 본 섬 부근에 여러 가지 어류가 모여오는 서식지로 될 리가 없다면 강치 어업을 계속해 나가는 일을 득이란 근거를 가지고 시험 탐사의 편의와 기회를 얻어 장래 유리하고 유망한 사업을 발견할 수 있다면







6양미영 31-37

p.31

一、潮流

1. 조류

本嶼附近の潮流は、方向区々にして一定せず。然れども、三四浬の冲合に於ては、

본 섬부근의 조류는, 방향이 각각 달라 일정하지 않다. 하지만, 3-4해리의 冲合에 관해서는,

概ね北方流にして、♤の速力一日約十浬なり。

대체로 북방류로해서, ♤의 속력 1일 약 10해리가 된다.

視察當日(三月二十七日)西嶼を距ること約一浬の處にて、測りたる海水溫度左の如し

시찰당일(3월 27일) 서서를 떨어진 것 약 1해리의 곳에서, 측정한 해수온도는 왼쪽과 같다

午前九時 氣溫八度 海水溫九度

오전 9시 기온 8도 해수온 9도

正午 氣溫八度九分 海水溫八度

정오 기온 8도 9분 해수온 8도

海水の比重は両面とも一、〇二五なりき。

해수의 비중은 양면 모두 1,025.



二、海深

2. 해심

東嶼を距ること東方約一浬の處は、二十七尋乃至三十七尋にして、底質は礫、または

동 섬에서 떨어진 곳 동방 약1해리의 곳은, 27길 내지 37길로 해서, 저질은 조약돌, 또는

不規則なる岩石あるが如し。

불규칙한 암석이 있는 것과 같다.

また、東嶼の北岸を距ること約五十間の處にて試測せしに、五十尋の深さを有し、西嶼を距る

또, 동 섬의 북안을 떨어진 곳 약 50 사이의 곳에 시측하러, 50길의 깊이를 有し,서 섬에서

こと北方約一浬の處にて三十五尋をはかれり。面してろの海底は岩石なるか如し。

떨어진 곳 북방 약 1해리의 곳에서 35길을 쟀다. 접해있는 해저는 암석なるか如し。



三、魚礁

3. 어초

魚礁は短時間の調査なりしを以て、發見すること能はざりき。

어초는 단시간의 조사로 발견하는 것能はざりき。



四、漁港

4. 어항

沿岸は、すべて斷崖峭立して、魚舟といへども繫留するに足る所なし。

연안은, 모두 단애초립해서, 고깃배라고는 해도 계류하기에 충분한 곳은 없다.



32p.

五、漁獲物の種類

5. 어획물의 종류

本嶼の近海に棲息繁茂せる海獸類、魚類、海藻類の主なるもの左の如し。

본 섬의 근해에 서식번무하는 해수류, 어류, 해조류의 주가되는 것은 왼쪽과 같다.

海獸類 海驢 鯨 マイルカ シヤチ カマイルカ等

해수류 강치 고래 향유고래 シヤチ 태평양흰줄무늬돌고래 등

魚類 鱶 鰮 鯖 柔魚 ♤ 鮹 鮪兒 飛魚 メバル

어류 상어 정어리 고등어 꼴뚜기 ♤ 문어 참치 날치 우럭

ツツリ等

ツツリ등



海藻類 和布 海苔 ホンダハラ スヂモ テングサ  アヲサ等

해조류 미역 김 ホンダハラ スヂモ 우뭇가사리 아오사 등

貝類 ヨメガサラ サザエ カメノテ 鮑 螺類等

패류 ヨメガサラ 소라 거북이다리 전복 고동류 등

されど、本嶼において、將來有望なる漁獵は、海驢獵のみにして、鮑の潛水器捕獲も多少望あ

그래도, 본 섬에 있어서, 장래유망한 어렵은, 강치렵뿐으로, 전복의 잠수기포획도 다소 희망

るが如し。海苔、和布は全島一面に群生すれども、冬季は海波高きを以て、

이 있다. 김, 미역은 전섬일면에 모여살지만, 겨울은 파도가 높은 것을 사용하여,

渡航採集の途なく、鱶は夏季に於て來集することあるも、

도항채집의 길이 없어, 상어는 여름에 모여드는 것이 있어도,

未だ捕獲の途を講ずるものなし。釣魚は僅に出漁者の食料に供するに過ぎず。

아직 포획의 길을 강구할 것은 없다. 조어는 겨우 출어자의 식량으로 제공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要するに、本岐は飮料水なくまた、漁港を有せざるを以て、海驢獵者が、辛うじて、

요컨대, 본기는 음료수가 없고 또한, 어항이 없는 것을 이용해, 강치렵자가, 겨우,

夏期數月間、渡航漁業を營むの外、ほとんど望を囑すべき漁業なきが如し。

하기 수개월간, 도항어업을 번영하는 외, 대부분 원하는 것을 부탁해야 하는 어업이다.



六、海驢漁獵の基因

6. 강치어렵의 기인

商業または鮑採捕のため鬱陵島へ渡航の途中、本岐に海驢の群棲するを實見せしは、

상업 또는 전복채포를 위해 울릉도에 도항하는 도중, 본기에 강치 떼가 사는 것을 실제로 본 것은

久しき以前の事なれども、該獸を捕獲して、內地に輸送するに至りしは、僅に八九年以前なる

오래전의 일이지만, 해수를 포획해서, 내지에 수송하는 것에는, 겨우 8-9년 이전이다.

が如し。



33p.

今を距ること八九年前、隠岐國の漁夫、鬱陵島にて難破せし漁港搜索のため、

지금으로부터 8-9년 전, 오키국의 어부, 울릉도에서 난파해서 어항수색을 위해,

本島に渡航せしに、海驢の群棲せるを見、五六十頭殺して內地に送り、

본 섬에 도항해서, 강치 떼가 사는 것을 보고, 5-60마리를 죽여 내지로 보내,

相當の利益を得しことあり。三四年前より、西鄕の住人中井養三郞氏、

상당한 이익을 얻은 것이 있다. 3-4년 전보다, 서향에 사는 사람 中井養三郞씨,

また海驢捕獲に從事し、將來有益の事業なるを發見するや、各地の漁夫これを傳聞して、

또 강치포획에 종사하고, 장래유익한 사업을 발견하고, 각지의 어부 이것을 전해듣고,

續々渡島し、競爭の結果、盛に濫獲するに至れり。仝氏は深くこれを憂慮し、

속속 섬을 건너, 경쟁한 결과, 남획하기에 이르렀다. 仝씨는 깊이 이것을 우려하여,

♤の筋に向つて領土編入を請願し濫獲豫防と海驢保護の方法とを講じ、仝時に

♤의 근을 향해 영토편입을 청원하고 남획예방과 강치보호의 방법을 강구해, 仝씨에게

該獸漁獵の專有權を得んことを出願せりこの擧は偶々以て領土編入の動機をつくりしものか、

해수어렵의 전유권을 얻는 것을 출원하는 이 행동은 쌍으로 영토편입의 동기를 만들었다

遂に三十八年二月二十二日を以て該島を島根縣の所屬となし、隠岐島司の所管と定めらる♤に

마침내 38년 2월 22일로 해도를 시마네현의 소속으로 하고, 오키섬 소속으로 정하는 것으

至たれり。面して、海驢漁獵は島根縣に於て、之れを許可漁業と爲し同年六月

로 한다. 面して、강치어렵은 시마네현에 있어, 이것을 허가어업으로 속여 같은 해 6월

中井養三郞外三名に漁獵の許可を與へたり彼等は合資組織の會社を設立し、

中井養三郞외 3명에게 어렵의 허가를 주는 등 그들은 합자조직의 회사를 설립해,

共同營業となし、以て今日に至たれり。

공동영업으로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七。海驢保護方法案

7. 강치보호방법안

保護方法の確立せるもの未たなし今中井養三郞氏の案を聞くに其の要領左の如し。

보호방법의 확립하는 것이 없이 지금 中井養三郞氏의 안을 듣는 것이 그 요령 왼쪽과 같다.

一、一ヶ年間に、牡は丈け八尺以下のもの、及び五百頭以上、牝及び幼兒は、各五十頭

1. 1년 동안에, 수컷은 길이 팔척 이하의 것, 및 500마리 이상, 암컷 및 새끼는, 각 50마리

以上を捕獲せざること。

이상을 포획하지 않는 것.

一、全島四分の一廣さを保護場と定め、巡獵せざること。

1. 전 섬 4분의 1 넓이를 보호장으로 정하고, 순렵하지 않는 것.

一、鯱、鱶類を驅逐すること。

2. 메기, 상어류를 구축하는 것.



34p.

一、保護場は實況に應じ幾年かを隔♤輪轉こと。

1. 보호장은 실황에 응하는 기년을 간격으로 윤전하는 것.

一、保護場以外は實況に應じて、或は每日各局部を巡獵し、或は幾日かを隔て♤

1. 보호장 이외는 실황에 응하여, 혹은 매일 각국부를 순렵하여, 혹은 기일을 간격으로

各部を輪番に巡獵する等♤酌を加ふること。

각부를 윤번으로 순렵하는 등 ♤작을 더하는 것.

一、捕獲の方法を改善し、爆聲を發せざる獵具を以て、海中に於て捕獲し得るに

1. 포획의 방법을 개선해, 폭성을 내지 않는 렵구를 이용해, 해중에서 포획하여 얻는 것에

至らんことを務むること。

이르는 것을 책임질 것.



八、捕獲

8. 포획

漁期は、每年四五月頃より、七八月頃にして、會社は、多數の漁夫を渡航せしめ、獵小屋

어기는, 매년 4-5월경보다, 7-8월 경에 해서, 회사는, 다수의 어부를 도항시키고, 獵小屋

及び製造納屋を建設して、漁期間滯在し、專ら捕獲製造に從事せり。

및 제조납옥을 건설하고, 어기간 채제하고, 모두 포획제조에 종사한다.

漁具は♤網を用ふ。その使用法は、網を洞門に沈設し。その兩端は、岸上なる

어구는 ♤망을 사용한다. 그 사용법은, 망을 동굴 입구에 침설한다. 그 양단은, 안상인

二人の漁夫ろれを支持し、他の漁夫は、窟內に潛伏せる海驢を逐ひ出すなり、かくする時は海

두 어부를 지지하고, 다른 어부는 굴내에 잠복하여 강치를 쫓는다. 선을 그을 때는 강치는

驢は驚怖のあまり、全速力を以て進行し來りて、網目にか♤りて、遂に♤死するなり。

놀란 나머지, 전속력으로 진행해오고, 그물눈에か♤りて、마침내 ♤死한다.
[출처] 죽도및 울릉도|작성자 kwonoyub




  • 最終更新:2009-08-23 08:15:16